#30_대화란무엇인가(데이비드 봄) : 2. 대화란 무엇인가? (6)
파스칼 pascal
(본)
[대화의 비전]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되 그것들을 판단하지 않은 채로 유보하고,
각자의 의견을 타인과 동일한 선상에 둔다면 우리는 ‘한마음’ 즉 ‘일심’이 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차원의 유대감, 즉 ‘비개인적인 유대감’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충동대로 실행하는 것을 멈추고 가정을 유보하고 모든 것을 자세히 관찰한다면 우리는 모두 같은 의식 상태에 놓인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이 권력, 폭력, 증오 같은 것을 끝까지 안고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소멸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모두가 같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화가 날 때는 이유나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확실한 이유는 없어지고 증오가 증오를 낳으면서 지속된다.
우리가 지키려 하는 의견 안에는 엄청난 폭력성이 숨어있다.
단순한 의견이나 가정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와 동일시하는 것들이다.
지성은 본인의 가정을 고수하지 않는 열린 태도를 요구한다.
집단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이 선악을 판단하는 양심적인 존재 역할을 하면서 구성원에게 강한 최책감을 유발할 수 있다.
진리는 의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분명 다른 어떤 것, 아마도 암묵적인 정신의 보다 자유로운 활동에서 나올 것이다.
진리를 인식하려면, 즉 진리에 참여라면 먼저 의미가 일관되게 만들어야 한다.
(깨)
대화는 공동체적이다.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자리를 만들고 대화를 통해 공동체는 공동의 의미를 갖게 돤다.
하지만 공동체는 의견을 강요하는 집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증오가 증오를 낳으면서 지속되는 것’은 시스템 사고에서 ‘부담 떠넘기기 원형’이다.
이것에 대한 레버리지는 ‘강화 프로세스’가 아니라 ‘균형 프로세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적)
‘진리는 대화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천국도래의 시점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라고 선언한다(눅 17:20-21)
평소에 예수에게 욕을 먹었던 바리새인들 안에 천국이 있다는 말은 수긍하기가 어렵다.
중요한 것은 ‘너희’다. 천국은 사람들 안에 있다.
이것은 감추인 보화, 진흙 속의 진주처럼 가려져 있다.
발견하기 위해 의미가 일관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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