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가의 질문에 대한 최보미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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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듣고 보고 말하고 쓰는 데 어떤 감각이 작용하는지 살펴보아요. 입출력에 작용하는 감각들에 대한 명상, 쯤이에요. 이 질문을 처음 받고 '감각'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우선은 진짜 감각. 오감을 통한 자극과 반응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부러 쉽게 쓰지 않은 텍스트를 어떻게든 입력하려 노력하면 토기가 올라온다. 참아가며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곤 하는데, 그 과정은... 내장을 억지로 재배치 하는 과정처럼 속이 괴로웠다. 좋은 텍스트를 마주하면 고양감에 몸에 열이 오른다. 손발 끝이 찌르르 감전일 듯 떨린다. 춤을 추고 싶어진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텍스트는 읽다 말고 눈을 감고 크게 숨을 쉰다. 잔뜩 긴장한 근육을 이완시키고, 눈을 감아서 시각적 정보를 차단하고. 슬프거나 아픈 텍스트를 읽으면 정말 몸이 아프다. 보고 말하고 쓸 때, 나는 되도록 먹지 않는다. 음료는 목구멍 뒤로 넘기기만 하면 되니까 논외인데, 뭘 씹어삼키는 건 부담스럽다. 인풋과 아웃풋을 음식말고 텍스트와 상호작용에 집중해야 하니까. 둘을 같이 하면 꼭 한 쪽이 어려워진다. 감각을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무엇을 볼 수 있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예민함-또는 둔감함-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2. 읽기도 쓰기도 가벼워지는 시대랍니다. 인공지능 무한확장으로 더 그래요. 우리에게는 여전히 읽는 힘, 쓰는 힘이 필요한 시대인가요? 결국 같은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본다. 쉽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데 하루 열량이 다 채워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테다. 그럼 인간의 이빨은 무뎌질까? 부드러운 것만 목 뒤로 넘기며 자라는 인간은 아주 거칠고 씹기 어려운 것을 먹으며 자라는 인간과 어떻게 달라질까? 암튼 읽기와 쓰기가 가벼워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너무 뭐가 많고 복잡하니까. 시행착오를 가능한 한 줄이고 싶으니까. 나는 '편리함'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가끔은 그것이 무엇을 배제하며 떠오른 -ㅁ일까를 두고 스스로를 향한 일침을 놓고 싶어진다. 나는 잘 닦인 도로를 달리느라 도로 뒷편의 무엇을 못 보고 지나쳤을까. 물론 그런 도로 위를 달리는 게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굳이 비포장 도로를 걷는 수고를 없애주니까 다칠 일도 더러 없겠다. 다만 어떤 건물은 일부러 복잡하게 설계될 수도 있다. 큰 도로와 골목을 나누지 않고, 건물 한 가운데를 터서 두 길 사이의 지름길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읽는 힘, 쓰는 힘이라는 건... 모두가 다른 체형을 타고 났기에 다른 운동에 적합하듯이, 다양한 텍스트의 해석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3. 읽기쓰기가 치유하는 역할도 한다는데, 믿을만 한가요? 치유라는 단어가 싫다. 그런고로 치유하는 역할이라 말하지 않겠다. 다만 위로와 안전, 마주 잡을 손, 사정 없는 회초리, 본받고 싶은 어른, 필요했던 친구, 번뜩이는 영감이나 깨달음 쯤은 되겠다. 4. 읽기쓰기 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내 언어를 찾는 것. 사회에 통용되는 언어를 활용하기는 쉽다. 현상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도? 어렵지 않음. 근데 나만 할 수 있는 말을 내 표현과 내 방식으로 쓰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생각함. 나의 질문 :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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