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으로 산다는 것 : 티모 레토넨 『펭귄, 팀프러너가 되다』 독서 에세이(by 조코)
박한배
퍼스트 펭귄으로 산다는 것
: 티모 레토넨 『펭귄, 팀프러너가 되다』 독서 에세이
책을 읽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별무리고등학교에는 팀 프로젝트 팀장들이 이수하는 '퍼스트 펭귄'이라는 수업이 있는데, 이 책 역시 신입생들을 '펭귄'이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나 절묘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같은 지향점을 향해 걷고 있었기에 만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었음을 말이다.
별무리의 '퍼스트 펭귄' 정신
남극의 펭귄 무리가 바다를 앞에 두고 망설일 때, 포식자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먼저 차가운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한 마리가 있다. 그 '퍼스트 펭귄'의 용기가 있어야 비로소 나머지 무리도 바다로 뛰어들 수 있다. 별무리에서 말하는 리더십도 이와 같다. 누가 시켜서 하는 역할이 아니라, 동료들이 주저할 때 먼저 뛰어들어 팀 전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용기, 그것이 우리가 가르치고자 하는 리더십의 본질이다.
돌이켜보면 별무리고등학교 자체가 한국 교육계의 '퍼스트 펭귄'이었다. 10년 전, 아무도 가지 않은 고교학점제의 길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실패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다. 누군가는 먼저 뛰어들어야 한국 교육의 물길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낯선 핀란드 이야기가 우리 곁의 목소리로 들리는 이유
『펭귄, 팀프러너가 되다』가 술술 읽혔던 이유는 명확하다. 티모 레토넨이 제시하는 팀프러너십(Teampreneurship)의 원리가 우리가 지난 10년간 치열하게 고민해온 현장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한 학습: 티미아카테미아의 독서 클럽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팀원들과 함께 의미를 창조한다. 이는 우리가 피터 센게와 데이비드 봄을 공부하며 추구했던 '집단 지성이 흐르는 대화'와 맥을 같이 한다.
프로젝트를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 실제 팀 기업을 운영하며 배우는 핀란드의 학생들처럼, 별무리 학생들도 지역 축제 기획, 사회 문제 해결 등 실전 프로젝트를 통해 교과서 밖의 진짜 세상을 배운다.
자기주도적 개인 학습: 500여 개의 과정 중 스스로 학습을 설계하는 고교학점제 시스템은 학생을 수동적인 피교육자가 아닌, 자기 삶의 주권자인 '팀프러너'로 성장시킨다.
재창조를 통한 맥락화: '별무리 모델'을 향하여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교육 모델의 '맥락화(Contextualization)'였다. 스페인의 MTA는 핀란드 모델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역사와 바스크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재창조했다.
오는 1월, 빌바오에서 MTA를 직접 마주하게 될 나의 마음속에는 설렘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외형적인 '방법'이 아니라 그 이면의 '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별무리는 기독교 대안학교로서 제자도, 공동체, 소명, 샬롬이라는 고유한 핵심 가치를 품고 있다. 또한 금산이라는 농촌 지역의 맥락과 기숙사 공동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핀란드와 스페인의 모델을 별무리의 토양에 맞게 재해석하여 '한국형 팀프러너십 모델'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다음 과제다.
교육 원리와 실천 방법론의 언어화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난 10년의 실천을 체계적으로 언어화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해온 것들이 단순히 '좋은 활동'에 머물지 않고, 다른 학교와 나눌 수 있는 '보편적인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교육 원리를 정리해야 한다. 차기 교장으로서 나는 교사들과 함께 다음의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별무리 교육 핵심 원리 5가지 정립
각 원리를 구현하는 구체적 교수·학습 방법론 개발
'퍼스트 펭귄' 교육과정의 고도화 및 재설계
팀 학습을 위한 교사 코칭 가이드 제작
별무리 모델의 대외 확산 및 공교육 협력 방안 모색
우리는 계속해서 '퍼스트 펭귄'이어야 한다
책의 첫 장에서 물에 뛰어드는 펭귄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았다. 별무리 역시 10년 전 처음 뛰어들 때의 그 설렘과 긴장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한국 교육의 변화를 위해 누군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빌바오에서 돌아오면, 동료 교사들과 함께 이 책을 거울 삼아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팀프러너를 키우고 싶은가?", "교사인 우리는 스스로 팀프러너인가?"
이 대화 속에서 피터 센게의 시스템 사고, 피터 호킨스의 팀코칭, 쿠제스와 포스너의 리더십 실천이 하나로 꿰어질 것이다. 퍼스트 펭귄으로 산다는 것은 한 번의 용기로 끝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도전하고, 실험하며, 배운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삶이다. 별무리가, 그리고 우리 교사와 학생들이 그 거룩한 여정의 주인공이 되길 꿈꾼다. 이 책은 그 길 위에서 우리를 안내할 가장 든든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어요.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