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그 가운데 우리가 있다 데이비드 봄 『대화(On Dialogue)』 독서 에세이(by 조코)
박한배
대화, 그 가운데 우리가 있다
데이비드 봄 『대화(On Dialogue)』 독서 에세이
오랜만에 책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밑줄을 요구했고, 여백에는 '!', '별무리에서 해보자', '이거다' 같은 메모들이 빼곡했다. 데이비드 봄의 『대화』는 그런 책이었다. 양자물리학자가 쓴 대화에 관한 책이라니, 처음엔 좀 낯설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대화의 본질을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철학은 대화 가운데 있다
몇 년 전 강영안 교수의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를 읽었을 때, 한 대목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철학은 구성원 간의 대화 하는 그 가운데 있다." 철학이 책 속에, 학자의 머릿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생각하고 질문을 나누는 바로 그 순간에 살아 숨쉰다는 것. 그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별무리에서 교사들과 교육철학을 논의할 때, 나는 의도적으로 '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완성된 철학적 텍스트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읽고, 각자 어떻게 이해했는지 나누고, 우리 맥락에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질문하며, 서로의 관점을 교환하는 거였다. '제자도'가 무엇인지, '공동체'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소명'을 어떻게 발견하는지 - 이런 개념들을 우리는 대화를 통해 함께 만들어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대화들이 항상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때로는 각자 자기 생각만 말하고 끝나는 것 같았고, 때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 부족했지만,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대화가 가능한지 몰랐다.
그런데 봄의 책이 그 답을 줬다. 아니, 정확히는 답이 아니라 '방법'을 알려줬다.
생각의 덫에서 벗어나기
봄이 지적하는 핵심은 주목할만하다. 우리가 '내'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문화와 사회에서 습득한 집단적 사고라는 것.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나'로 동일시하고, 그걸 방어하려 한다. 누군가 내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면, 나 자신이 공격받는 것처럼 느낀다. 이게 갈등과 분열의 시작이다.
교사회의를 떠올려본다. '학생 자율성'을 논의할 때,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선생님은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교육방법에 관한 의견 차이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가진 '인간관', '교육관', '기독교 세계관'의 차이가 부딪히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는 자기 관점이 '옳다'고 확신한다.
봄은 이렇게 묻는다. "왜 우리는 자기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가?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멈췄다. 나도 늘 확신에 차서 말해왔다. 내가 교감이니까, 내가 더 오래 고민했으니까, 내 경험상 이게 맞으니까.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내 관점에서' 그럴 뿐이다.
봄이 말하는 사고의 문제가 바로 이거다. 사고는 의미를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의 해석을 '사실'로 여기고, 다른 관점을 '틀렸다'고 여긴다. 이 장벽을 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진짜 대화에 도달할 수 없다.
대화란 무엇인가 - 의미가 흐르도록 하기
봄의 대화 개념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의사소통 기술이 아니라 존재론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대화(dialogue)의 어원, 'dia'(통하여)와 'logos'(의미)가 말해주듯, 대화는 의미가 우리를 통해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내 생각을 주장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게 아니다. 내 생각, 네 생각을 뛰어넘어, 우리가 함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거다. 마치 여러 악기가 모여 하나의 교향곡을 만들어내듯, 여러 관점들이 만나 새로운 이해를 창조하는 거다.
강영안 교수가 "철학은 대화 가운데 있다"고 했을 때, 바로 이 의미였구나 싶다. 철학적 진리는 책 속 문장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생각하고 탐구할 때 그 가운데에 살아 움직인다. 별무리에서 우리가 '제자도'를 논할 때, 진정한 제자도의 의미는 교과서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질문하고 나누는 그 순간에 드러난다.
보류 - 판단을 공중에 띄워두기
봄이 제시하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어려운 실천이 보류(suspension)다. 즉각적인 판단, 반응, 옹호를 멈추고 공중에 띄워두는 것.
지난 학기 교사회의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한 선생님이 새로운 평가 방식을 제안했을 때, 나는 즉각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은데요"라고 반응했다. 그 순간 대화는 멈췄다. 그 선생님은 더 이상 자기 생각을 펼치지 않았고, 회의는 다른 안건으로 넘어갔다.
봄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보류'에 실패한 거다. 그 제안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선 즉각적으로 판단이 일어났다. '우리 상황에 안 맞아', '시간이 너무 걸려', '학부모들이 반대할 거야'. 하지만 이 판단들을 나는 검토하지 않았다. 그냥 '현실'로 받아들이고 말했다.
보류는 이런 자동적인 반응을 멈추고, "왜 나는 이렇게 반응하는가?", "내 가정은 무엇인가?", "다른 가능성은 없는가?"를 탐구하는 거다. 그 선생님의 제안을 공중에 띄워두고, 함께 살펴보는 거다. "이 방식의 장점은 뭘까요?",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나요?",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이런 질문들을 나눴다면, 우리는 새로운 이해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보류는 억압이 아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인식하되,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관찰하는 거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읽으면서 절감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화의 문턱이다.
집단적 주의 - 함께 생각하기
봄이 말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집단적 주의(collective attention)다. 대화에서 우리는 각자 자기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별무리 교사들과 교육철학을 논의할 때, 우리는 주로 내용에만 집중했다. '제자도가 무엇인가', '우리 교육과정은 어때야 하는가'. 하지만 봄은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 대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누가 말하고 누가 침묵하나?", "어떤 가정들이 작동하고 있나?", "무엇이 우리를 막고 있나?"
이런 메타적 성찰이 대화를 깊게 만든다. 우리가 '공동체'를 논하면서, 정작 지금 이 자리가 진짜 공동체인가를 돌아보는 거다. 우리가 '경청'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정작 서로의 말을 진짜 듣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거다.
별무리에서 대화를 실천하기
책을 덮으면서,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떠올랐다. 봄이 제시하는 대화의 실천 원칙들을 별무리에 적용해보고 싶다.
첫째, 정기적인 대화 모임을 만들자. 한 달에 한 번, 안건 없이, 결론 내지 않기로 하고, 그저 함께 생각하는 시간. 2시간 정도 원형으로 둘러앉아, 지금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우리가 품고 있는 질문들을 나누는 거다. 처음엔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봄은 말한다. 신뢰와 안전은 지속성을 통해 쌓인다고.
둘째, 보류를 연습하자. 교사회의에서 누군가 의견을 낼 때, 즉각 판단하지 말고 질문하기.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 내 반응을 공중에 띄워두고, 함께 탐구하기.
셋째, 집단적 주의를 키우자. 회의 중간에 5분씩 멈추고 물어보기. "지금 우리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관점은 없나요?" 내용뿐 아니라 과정을 함께 관찰하기.
넷째, 철학적 텍스트로 대화하기. 강영안 교수의 통찰처럼, 교육철학 문헌들을 함께 읽고 대화하기. 하지만 이제는 봄의 방법으로. 각자 어떻게 이해했는지 발표하는 게 아니라, "이 개념을 우리 맥락에 적용하면?", "이 저자의 가정은 무엇일까?",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같은 질문으로 함께 탐구하기.
대화 가운데로
이 책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법서가 아니었다. 사고와 존재에 관한,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함께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는가에 관한 철학서였다. 오랜만에 밑줄 그으며, 여백에 메모하며, 다시 읽고 싶은 문장들을 표시하며 읽었다.
별무리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공유비전', 센게가 말하는 '학습하는 조직', 호킨스가 강조하는 '팀 학습' - 이 모든 것의 기초에 봄의 대화가 있다. 진정한 대화 없이는, 우리는 각자의 생각 안에 갇혀 있을 뿐이다.
강영안 교수의 말이 이제 완전히 이해된다. 철학은, 그리고 교육도, 비전도, 혁신도, 대화 가운데 있다. 구성원들이 함께 생각하고, 가정을 검토하고, 의미를 탐구하는 바로 그 가운데 살아 숨쉰다.
별무리에서 이런 대화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쉽지 않을 것이다. 봄도 말했듯, 이건 기술이 아니라 수련이니까. 하지만 시작은 해야 한다. 다음 교사 모임부터, 천천히, 함께. 대화가 흐르는 학교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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